자동차 용어는 대부분 외래어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에서 그 의미와 기능이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명칭만으로는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울 때도 적지 않다. 용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겼고, 왜 이런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인지 알아보자.
보닛(Bonnet)
보닛은 유럽식 자동차 용어로 엔진룸 덮개를 뜻한다. 북미 지역에서는 보닛 대신 후드(Hood)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보닛의 어원은 머리 부분과 챙의 구분이 없는 ‘보닛 모자’에서 유래했다. 보닛의 형상과 보닛 모자가 유사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머리에 살짝 덮는 모자에 보닛이라는 이름이 붙은 점을 고려하면 ‘엔진룸을 덮는다’는 의미가 강조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로커 패널(Rocker panel)
로커 패널은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에서 측면부와 하단부가 만나는 도어 아래 부위를 의미한다. 종종 사이드 스텝(Side step) 또는 사이드 스커트(Side skirt)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승하차 편의 또는 공력 성능 향상을 위해 로커 패널에 덧붙인 부품(커버)을 지칭한다.
로커 패널의 유래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다. 그중 가장 유력한 건 1940년대 이전 클래식카의 앞뒤 펜더를 부드럽게 이은 아치 형태의 로커 패널이 흔들의자 따위의 곡선 지지대(Rocker)와 닮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로커 패널은 차체가 앞뒤 수평을 맞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충돌 사고 시 승객실을 보호한다. 아울러 주행 시 흙과 돌이 차체 위로 튀어 오르는 것도 방지한다. 모노코크 설계가 보편화되면서 래더 프레임에 장착되던 로커 패널은 이제 차체에 통합된 형태로 발전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델타 글라스(Delta glass)
델타 글라스는 1열 도어 앞쪽에 위치한 삼각형 창문을 말한다. 창문 형태가 삼각형(Delta)이라는 의미로 델타 글라스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과거에는 송풍(Vent) 기능이 적용된 경우가 많아 프런트 벤트 글라스(Front vent glass)로 불렸다. 실내로 주행풍을 유입시키는 용도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에어컨이 대중화된 1980년대 이후 자동차에는 이런 프런트 벤트 글라스를 보기 어렵게 됐고, 개방되지 않는 델타 글라스의 형태로만 남았다. 델타 글라스를 적용하면 추가적인 시야 확보가 가능해 안전 운전에 도움을 준다. 특히 코너에서 A필러 사각지대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한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
트렁크(Trunk)
트렁크는 미국식 자동차 용어로 사람이 탑승하는 객실과 분리된 적재 공간을 말한다. 영국 문화권에서는 트렁크 대신 부트(Boot)라는 명칭을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트렁크 개구부를 덮은 외장 패널은 트렁크 리드(Trunk lid)로, 객실과 적재 공간이 이어진 해치백, 왜건, SUV, 패스트백에서는 테일게이트(Tail gate)라는 단어로 구분한다. 트렁크 명칭의 유래는 여행용 트렁크 가방에서 비롯됐다. 초창기 자동차는 마차와 마찬가지로 적재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물건을 싣기 위해서는 때마다 차체 후방에 트렁크 가방을 매달았다. 그러나 트렁크 가방을 차체에 고정하는 과정이 번거롭고 주행 중 트렁크 가방이 떨어질 위험도 있어 점차 적재 공간이 차체의 일부로 통합된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오페라 윈도(Opera window)
오페라 윈도는 자동차 C필러에 설치된 창문을 말한다. C필러와 리어 쿼터 패널(Rear quarter panel)이 하나의 부품으로 제작되기에 쿼터 글라스(Quarter glass)라고도 불린다. 오페라 윈도라는 명칭은 전통적인 오페라 극장의 개별 발코니 객실에서 유래했다. 발코니 객실은 높게 자리해 일반 객석에서 누가 앉았는지 확인이 어려운 반면, 발코니 객실에서는 무대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과거 오페라의 주요 관객인 귀족을 고려해 사생활을 보호하며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것이다.
대시보드(Dashboard)
대시보드는 각종 계기류와 공조장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의 장치를 모아 놓은 실내 주요 부품이다. 대시보드라는 명칭 역시 마차에서 유래했다. 말 발길질에 의해 흙이나 자갈이 튀어 탑승자에게 던져지는(Dash) 것을 막기 위해 주행 방향 쪽에 설치한 판(Board)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로도 대시보드는 꼭 필요한 요소로 남았다. 차바퀴가 회전하면서 오염물질이 튈 수 있고,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도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대시보드에 엔진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계기 장치와 각종 편의 사양이 부착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글로브 박스(Glove box)
글로브 박스는 대시보드 조수석 쪽에 마련된 수납공간이다. 장갑(Glove)을 보관하는 수납함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그렇다면 장갑을 보관하는 수납함과 자동차 사이에 연관성은 과거에는 장갑이 날씨와 상관없이 운전에 필요한 필수품에 가까웠다. 초창기 자동차는 지붕이 없는 구조로 운전자가 외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스타트 모터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사람이 엔진 시동을 걸기 위해 쇠 막대를 꽂아 크랭크 축을 돌려야만 했다. 여러모로 장갑을 착용해야 할 이유가 많았던 것이다.
멀티펑션(Multi function)
멀티펑션은 스티어링 칼럼 좌/우에 부착된 조작 장치다. 자동차 사양이 늘어남에 따라 운전석 주변 대시보드에 부착되던 조작 장치들이 사용하기 편한 막대기 형태로 발전한 결과다. 다양한(Multi) 기능(Function)을 한데 모았다는 의미이며, 콤비네이션 스위치(Combination switch)라고도 불린다. 멀티펑션의 특징은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지 않고 와이퍼, 방향지시등, 헤드램프, 크루즈 컨트롤 등 주행과 관련된 부가적인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용어는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것들이 그대로 고유 명사처럼 경우가 많다. 특히 마차나 클래식카에서 사용하던 단어가 현재까지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자동차 외장을 설명하는 단어에서 이런 경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차에서 말 대신 엔진을 덧붙인 형태로 출발한 자동차에 그 흔적이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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